평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 남자가 사랑에 눈 뜨다! 일생에 단 한번, 남자가 사랑할 때… 라고는 하는데, 태일(황정민)이 호정(한혜진)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뿐 아니라 호정이 조금씩 태일에게 마음을 주게되는 과정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극적인 만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채권자의 깡패와 채무자 관계임에도 서툰 사랑표현 방법에서 조금씩 진심을 느낀다? 진심이고 뭐고 일말의 호감이라도 생기기나 할 지 진지하게 궁금하다. 그 부족한 공감으로 인해 영화의 초반은 상당히 지루하다.
주인공의 인물 설정과 더불어 기승전결까지 너무도 진부하다. 정이 많은 깡패, 표현이 서툰 남자따위의 캐릭터 설정은 대한민국 영화에서 지겹도록 봐온데다가, 죽음이라는 장치로 인한 갈등과 그 갈등으로 갈라서고 다시 합쳐지는 과정은 도대체 몇 번이나 더 봐야 할까.
어쩌면 이런 영화에서의 플롯은 진부해질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슬픈 사랑 이야기라면 넣을 수 있는 장치가 상대적으로 한정적이고(특히 깡패가 등장하는 영화에선 더더욱), 조금 다른 플롯을 가지려 하면 자칫 과한 영화가 되어버리기 쉽다.
그런데 중간에 신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카메오와 대사는 굳이 들어갔어야했나 싶다. 뜬금없는 그의 등장은 진지한 갈등의 순간에 신세계를 관람했던 사람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의다집중을 흐트려놓는 것마저 성공했다.
두 번 반복되는 병동생활과 장례식의 장면들을 비슷하게 보여주면서 죽음이 가져오는 고통과 슬픔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모두 절대악이 없었던 것도 영화의 주 적을 죽음으로 집중시키는 데 한 몫을 한다. 내겐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 남녀간의 사랑의 장애로써의 슬픔보다도, 가족애와 형제애에서 오는 슬픔이 더 크게 와닿았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사랑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선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 초반에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납득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더욱 가족애가 돋보였던 것 같다. 미운정 가득한 형제애만큼은 짧지만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발생을 너무 쉽게 생각한 영화 초반부의 각본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억지스럽고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미 서로 사랑하게 된 뒤에 쉽지 않은 남자의 사랑을 조금은 거칠면서도 뭉클하게 표현했지만, 시작은 왜 그리 쉽게 그려졌을까 아쉽기만 하다. 무작정 만나면서 상대가 마음을 열길 기다리는 노력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열릴 만큼 사랑은 쉬운 게 아니다.